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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한 고집으로 레드(red)에 돈을 걸었다. …난 극단적인 모험을 해 구경꾼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나는 모험에 대한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주위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소리쳤다. 이미 열 네 번이나 레드가 나온 다음이란 말이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yevsky)의 소설 [노름꾼(The Gambler)]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주인공 알렉세이 이바노비치가 카지노에서 트랑테 카랑트(trente et quarante)라는 카드 게임을 하는 장면이다. 이 게임은 룰렛(roulette)처럼 블랙(black)과 레드(red)로 나뉜 카드 열(row) 중 한 쪽이 이길 것으로 보고 돈을 거는 것이다. (카드 숫자의 합이 30에 가까운 열이 이긴다.) 구경꾼들은 이미 여러 차례 잇달아 이긴 레드가 또 다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이바노비치의 어리석음을 나무랐다. 하지만 생각이 짧은 건 바로 그들이었다.

도박사의 오류



도박사의 오류는 잘못된 추론의 한 예를 보여준다. <출처:NGD>

이바노비치는 이틀 전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주 레드가 잇달아 스물 두 번이나 이긴 적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레드가 열 번쯤 잇달아 이긴 다음부터는 또 다시 레드가 나올 것으로 보고 돈을 거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예컨대 초심자들은 레드가 열 여섯 번 연속으로 이긴 다음이라면 열 일곱 번째는 틀림없이 블랙이 이길 것으로 믿고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많은 돈을 블랙에 걸었다. 그리고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소설 속 이야기는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라 일컫는 잘못된 추론의 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다. 룰렛 구슬이 블랙이나 레드에 멈출 확률은 같다. 하지만 이는 수백, 수천 번 구슬을 굴렸을 때의 이야기다. 짧은 기간에는 얼마든지 그 확률과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카푸친 씨가 게임을 한 어느 겨울 밤 레드가 스무 차례나 잇달아 나오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다음에는 당연히 블랙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는 뜻이다.

더 단순한 예를 들어보자.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똑 같은 동전 던지기의 경우다. 동전이 스무 번 연속 앞면이 나올 확률은 1,048,576분의 1이다. [(1/2)20=1/1,048,576]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첫 번째 동전을 던지기 전에 기대하는 확률이다. 이미 열 아홉 번 연속으로 앞면이 나온 다음이라면 스무 번째 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올 확률은 그냥 2분의 1이다. 열 아홉 번 연속 앞면이 나온 것은 분명 희한한 일이지만 이미 100% 확정된 사실이며 그 사실은 스무 번째 던지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무심한 동전은 지난 열 아홉 번의 던지기 결과가 어땠는지 기억할 리 없다.)

동전 던지기에서 열 아홉 번이나 앞면이 나왔으니 이제 뒷면이 나올 때도 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듯이 카푸친 씨가 “지난 몇 년 동안 주식 투자에서 줄곧 돈을 잃기만 했으니 이제 돈을 벌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면 같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물론 투자 실패가 거듭되면 학습효과가 나타나 다음 번 투자의 성공 확률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몇 번이나 연거푸 돈을 잃었으니 이번에는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단순한 추론은 도박사의 오류와 다를 바 없다.)

직장인 야구에서 2할5푼대 타율을 자랑하는 재규어 씨가 10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으니 이번에야 말로 틀림없이 안타를 칠 거라고 믿고 내기를 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재규어 씨가 그 동안 구질을 잘 분석하고 스윙 폼을 더 좋게 고쳤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지만.)

행동경제학자들의 화두가 된 휴리스틱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에서 도박사의 오류를 풀이할 때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휴리스틱(heuristic)은 ‘찾아내다’ ‘발견하다’는 뜻의 그리스 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말로, 불확실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풀기 위해 쓰는 주먹구구식 셈법이나 직관적 판단, 경험과 상식에 바탕을 둔 단순하고 즉흥적인 추론을 뜻한다.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연구로 널리 알려진 휴리스틱은 불확실성 하의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으로 떠올랐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1974년사이언스(Science)지에 발표한 논문(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에서 대표성 휴리스틱에 관해 상세히 설명했다.

‘찾아내다’라는 뜻의 그리스 말에 뿌리를 두고 있는 ‘휴리스틱’은 불확실성 하의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으로 떠올랐다. <출처:NGD>

대표성 휴리스틱은 어떤 개별적인 대상 A가 B라는 부류(class)의 특성들을 ‘대표(represent)’하는 것으로 보일 때 곧바로 ‘A는 B에 속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아마존은 정글의 여러 가지 특성을 대표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따져 볼 것 없이 ‘아마존은 정글’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A와 B는 일련의 사건(sequence)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A가 열 번의 연속적인 룰렛 게임, B가 만 번의 연속적인 룰렛 게임이라고 할 때 A는 B의 특성을 대표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아주 짧은 일련의 사건들이 훨씬 더 길게 이어지는 사건의 전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그 특성을 잘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앞면(H)과 뒷면(T)이 나타날 확률이 똑 같은 동전을 여섯 번 던졌을 때 H-T-H-T-T-H 순서로 나타날 가능성이 H-H-H-T-T-T 또는 H-H-H-H-T-H보다 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들은 동전 던지기가 무작위(random)가 아닌 것 같고 세 번째 것은 앞면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지도록 동전이 찌그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도박사의 오류는 이처럼 어떤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확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룰렛 구슬을 수없이 많이 던지면 블랙과 레드가 나타나는 빈도가 같아지겠지만 수십 번 던졌을 때는 어느 한 쪽에 편중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박사(엄밀하게 말하면 도박의 초심자)들은 이미 여러 차례 잇달아 레드가 나타났다면 다음에는 레드보다 블랙이 나오는 게 룰렛의 특성을 더 잘 대표하는 것이라고 보고 그런 결과를 예측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카푸친 씨의 직업은 뭘까

‘카푸친 씨는 매우 수줍음이 많고 내향적이다. 그는 언제나 도움이 되는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들이나 현실 세계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온순하고 깔끔한 사람이며, 질서와 체계, 그리고 디테일에 대한 열정을 필요로 한다. 카푸친 씨의 직업은 (농부, 세일즈맨, 항공기 조종사, 도서관 사서, 엔지니어 중)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카푸친 씨가 도서관 사서의 특성을 가장 잘 대표한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심각한 오판이 될 수도 있다. 카푸친 씨의 성격과 도서관 사서의 특성이 비슷하더라도 그가 반드시 사서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사전확률(prior probability)을 무시할 때 오판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 특정 직업에 대한 대표성에만 주목한 이 추론은 기본적으로 카푸친 씨 또래 가운데 사서보다는 농부가 100배나 더 많을 수도 있는 직업별 분포를 무시한 것이다.

표본의 크기(sample size)에 대해 둔감해서 오판을 하는 경우도 많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다음과 같은 실험결과를 소개했다.‘정글타운에 병원이 두 곳 있다. 큰 병원에서는 하루 평균 45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작은 병원에서는 15명이 탄생한다. 잘 알다시피 모든 아기의 50%는 남자다. 그러나 정확한 성비는 날마다 다르다. 어떤 날은 남자 아기가 50%를 넘고 어떤 날은 그 수준을 밑돈다. 두 병원은 태어난 아기의 60% 이상이 남자였던 날이 1년에 며칠이나 되는지 기록했다. 두 병원 가운데 그런 날이 더 많은 병원은 어디였을까?’ [실험 대상 대학생 가운데 21명은 큰 병원, 21명은 작은 병원이라고 답했고, 53명은 두 병원에서 (남자 아기가 60% 이상이었던 날 수가) 거의 같았을 거라고 답했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가장 쉽게 찾아 쓸 수 있는 데이터나 기억의 바다에서 가장 빨리 건져 올릴 수 있는 생생하고 도드라진 정보를 활용해 판단하는 것이다. <출처:NGD>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은 가장 쉽게 찾아 쓸 수 있는 데이터나 기억의 바다에서 가장 빨리 건져 올릴 수 있는, 가장 생생하고 가장 도드라진 정보를 활용해 판단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단연 암이다. 그렇다면 사망원인 2위는 무엇일까?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얼른 떠올릴 수 있는 기억에 의존해 답을 내놓을 것이다.친지 몇 사람을 교통사고로 잃은 기억이 생생한 이는 사고사, 친구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이는 자살의 빈도를 실제보다 더 높게 판단할 수 있다. 끔찍한 테러나 살인사건에 대한 매스컴 보도는 타살에 대한 기억을 부풀릴 수 있다.

[2009년 인구 10만명 당 암으로 사망한 이는 140.5명에 달했다. 그 다음은 뇌혈관질환(52명), 심장질환(45명), 자살(31명), 당뇨병(19.6명), 교통사고(14.4명) 순이었다. 10년 전에는 교통사고가 4위, 자살이 7위였다. 10~30대 젊은 층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구체적인 사례를 얼마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지에 영향을 받는다. 엄청난 금융위기와 패닉(panic)을 경험한 투자자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투자의 리스크(risk)를 더 높게 평가하고, 큰 지진이나 화재를 막 겪은 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보험에 들려 할 것이다.

휴리스틱을 통한 판단에 의존하면 어떤 기준점에 얽매이는 이른바 심리적앵커링(anchoring)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불완전한 계산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도 앵커링 효과가 나타난다. 트버스키와 카너먼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5초 동안 암산으로 다음 두 곱셈의 답을 내라고 주문했다.

[첫 번째 그룹의 암산 문제] 8 x 7 x 6 x 5 x 4 x 3 x 2 x 1 = ?
[두 번째 그룹의 암산 문제] 1 x 2 x 3 x 4 x 5 x 6 x 7 x 8 = ?

첫 번째 그룹 학생들이 제시한 답의 중간값(median)은 2250, 두 번째 그룹이 내놓은 답의 중간값은 512였다.
[정답은 40,320이다.]

주먹구구 셈법은 얼마나 믿어야 하나

카푸친 씨는 고성능 컴퓨터와 같은 계산능력을 가진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가 아니다. 그런 카푸친 씨가 정글경제를 살아가는 데 휴리스틱은 매우 유용한 의사결정 방식일 수 있다. 정글경제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젤 무리는 사자의 기척만 느껴도 이리저리 따져보지 않고 일단 뛰고 본다. 차분하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겨를이 없다. 직관과 주먹구구로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휴리스틱은 인간의 중요한 생존본능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휴리스틱은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 주먹구구의 한계를 분명히 알지 못하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카푸친 씨는 자신의 주먹구구 셈법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과신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장경덕 이미지
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988년 매일경제 기자로 정글경제 탐사를 시작했다. 금융과 투자의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을 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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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타임머신을 만들지 못한 인간들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한다.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 미래를 보려는 욕망이 강해질수록 예측의 과학과 기술도 더욱 번창할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정글경제에서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아맞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남다른 혜안과 통찰력을 보여준 이들의 몸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빗나간 예측들

“사람들은 경제학을 예측의 과학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시카고학 파(Chicago school of economics)의 접근방법은 낙제점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이론은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주류경제학자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컬럼비아대 교수의 공격이다.

“경제학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를 미리 내다보거나 막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 널리 퍼져있다. 특히 거시경제학자들은 값어치 없고 해롭기까지 한 수학적 모델을 쓰는 잃어버린 세대로 묘사된다. 이는 터무니없는 묘사라고 생각한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시카고대 교수가 주류경제학자들을 변호한 말이다.



2세기 전에 이미 인구폭발에 따른 지구촌 재앙을 경고했던 토머스 맬서스 <출처 : wikipedia>

루카스는 대중이 경제학자들에게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냐고 물은 다음 “우리는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 파산 직후와 같은 금융자산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갖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변론을 잠시 더 들어보자.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준 의장도 잠재적인 위기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위기가 터진 후에 나온 것과 같은 대규모의 통화정책을 선제적으로 취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마치 어떤 차가 갑자기 당신 차선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당장 차의 방향을 틀어 도로를 벗어나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도 경제학자들의 빗나간 예측에 대한 비판과 조롱은 늘 있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듯 ‘지난 한 번의 경기침체를 두서너 대여섯 번 예측한’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아냥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라비 바트라(Ravi Batra)의 [1990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of 1990)]은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그의 예언은 끝내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2세기 전에 이미 인구폭발에 따른 지구촌 재앙을 경고했던 토머스 맬서스 (Thomas Malthus)의 예언도 결국 빗나갔다. [인구 폭발에 대한 공포는 오랫동안 인류의 사고를 지배했다. 1960~70년대까지도 공상과학소설에는 30년 동안 생식을 금지하거나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인구를 안락사 시키는 것과 같은 극악한 처방이 나올 정도였다.]

오늘날 카푸친 씨는 예언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닥터 둠(Dr Doom)들이 수도 없이 경고한 것처럼 과연 글로벌 경제가 더블딥(double dip)에 빠질지, 글로벌 통화전쟁이 파국으로 치달을지, 세계경제가 또 다른 금융위기를 겪게 될지, G2(미국과 중국) 간 패권다툼과 문명 간 충돌로 지구촌이 더욱 위험한 싸움터가 될지, 역사발전의 마지막 단계라던 자본주의가 새로운 체제로 진화하거나 변혁을 겪을지, 생명과학과 정보기술의 힘으로 유토피아(Utopia)나 디스토피아(Dystopia)가 실현될지에 관한 온갖 예언들을 들으며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누구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카푸친 씨도 족집게 도사가 될 수 있다

카푸친 씨가 찾는 사람은 터무니없는 예언을 늘어놓는 주술사가 아니다. 그는 진정한 통찰력을 갖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이를 찾고 있다. 그런 카푸친 씨는 어떤 전문가의 예측을 신뢰하기 전에 먼저 지난날 그 전문가가 했던 예측들이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를 알아보려 할 것이다. 적중한 예측의 기록이 많이 쌓인 전문가일수록 권위와 신뢰는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권위 있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그의 예측을 맹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예컨대 어떤 이코노미스트나 애널리스트들의 예측이 여러 차례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들을 족집게 도사로 치켜세우며 무작정 따르는 이들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fallacy of appeal to authority)’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그 예측이 맞아떨어진 게 그들의 예지력보다는 순전히 운에 따른 것이라면 그를 무턱대고 믿었던 이들이 안을 위험은 참으로 클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전문가들은 얼마나 많은가? 카푸친 씨는 그런 운 좋은 전문가를 직접 키워낼 수도 있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카푸친 씨는 정글야구단과 아마존야구단이 맞붙는 2015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때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정보지를 팔아 돈을 벌고 싶다. 그는 일곱 차례 경기의 승패를 족집게처럼 알아맞힐 수 있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대중들이 믿어줄) 최고의 전문가를 내세우려 한다.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네 번 내리 경기 결과를 알아맞힌 스타 분석가를 내세워 다음 경기를 예측하는 정보지를 판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카푸친 씨는 우선 16명의 ‘야구경기 분석 전문가’를 고용한다. 그들이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어도 상관 없다. 1차전에서는 16명의 ‘전문가’ 중 8명은 정글구단의 승리를, 다른 8명은 아마존구단의 승리를 점치도록 한다. 경기가 끝나면 어느 쪽이 승리하든 상관없이 8명의 예상이 맞아떨어진다. 2차전 때는 그 8명 중 4명이 정글구단의 승리를, 나머지 4명이 아마존구단의 승리를 예언한다. 이번에도 경기 결과에 무관하게 4명은 두 번 내리 경기 결과를 알아맞힌 것이 된다. 3차전에서는 4명 중 2명이 세 번 내리 결과를 알아맞힌 전문가가 된다. 4차전이 끝나면 네 번이나 내리 결과를 알아맞힌 족집게 분석가가 탄생한다. 네 번의 경기 결과가 어찌됐든 상관 없이 반드시 한 사람의 스타가 나오게 돼 있다.

예측은 정확한가? 이미지 1

이제 카푸친 씨가 할 일은 이 스타 분석가의 놀라운 선견지명을 널리 알리고 그의 견해를 실은 정보지를 비싸게 파는 일뿐이다. 5차전 승패를 알고 싶은 이들(특히 경기결과에 큰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이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족집게 도사의 예언을 들으려 할 것이다. (정글구단이 4연승하거나 4연패할 경우 이를 알아맞힌 분석가를 내세워 내년 시리즈 때 장사를 할 수 있다.)

같은 원리에 따라 시즌 중 일곱 번의 승패를 내리 알아맞힌 족집게 도사를 내세우려면 128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 된다. [27=128] 경기를 한 번 치를 때마다 결과를 알아맞힌 이들은 절반씩 줄어들어 7차전이 끝나면 일곱 번을 내리 맞힌 한 사람의 스타가 남게 된다. [128(0.5)7=1]

주식시장에서 연속 히트를 기록한 ‘투자의 귀재’들 중에도 단지 운이 좋아 스타가 된 이들이 있을 것이다. 워렌 버핏(Warren Buffet)이 제안한 것과 같은 동전 던지기 시합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블랙유머다. 한국에서 그 시합을 벌인다면 다음과 같은 식이 될 것이다.

15세 이상 인구 4,000만명에게 1만원씩 나눠주고 10원짜리 동전을 던지게 한다. 다보탑이 나오면 이기고 10이라는 숫자가 나오면 진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에게 가진 돈을 넘겨줘야 한다. 이기거나 질 확률이 반반씩이므로 동전을 던질 때마다 승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스물 네 번째 동전을 던졌을 때 24연승을 기록한 승자는 두 명이 남을 것이다. [4,000만명x(0.5)24=2.38명] 이들은 각각 1,677억원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1만원x(2)24=16,777,216만원] 이들은 다보탑이 나오도록 동전을 던질 수 있는 신기를 터득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일까? 그들이 스물 다섯 번째 동전을 던질 때 다시 이길 확률은 얼마일까?

회의주의자가 되라

어떤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들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늘 고민하는 카푸친 씨는 이제 보다 많은 의심을 품게 될 것이다. 우선 그 전문가들의 권위가 진정한 통찰력에서 나온 것인지 단지 운 좋게 맞아떨어진 예측의 기록이 쌓여서 생긴 것일 뿐인지 따져볼 것이다. 어떤 예측 전문가가 지난날 높은 적중률을 기록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확신할 근거가 있는지, 그의 말이 반증이 가능한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주술사의 예언일 뿐인지도 따져볼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미국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 <출처 : wikipedia>

카푸친 씨가 당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이론모형이 지닌 예측력의 한계를 논할 정도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출 수는 없다. 하지만 빗나간 예측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몇 가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어떤 이론모형도 현실을 완전하게 담아낼 수는 없으며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담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론모형은 어차피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변화무쌍한 현실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둘째, 비현실적인 가정들이 이론모형의 예측력을 크게 떨어트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완전한 정보를 갖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를 가정한 이론, 정보비대칭(informational asymmetry) 문제가 없고 늘 재빨리 균형으로 돌아가는 가장 효율적인 시장을 전제로 한 이론모형으로 투자자나 소비자의 온갖 비합리적인 행태나 금융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예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과거 역사에서 어떤 운동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미래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예측의 한계를 생각해야 한다. 우선 그 법칙이 과연 법칙이라 할 만한 것인지부터 의심해봐야 한다.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에 나선 경제학자든 과거의 추세를 보고 주가를 예측하려는 기술적 분석가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역사주의(Historicism)를 강력히 비판한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수레를 예견한다는 건 그 걸 만들어낸다는 것(to predict the wheel is to invent it)”이라고 말했다. 수레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수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수레는 이미 미래가 아니라 현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레가 나올 걸 미리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이는 훨씬 더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장경덕 이미지
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988년 매일경제 기자로 정글경제 탐사를 시작했다. 금융과 투자의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을 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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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셀롯 씨가 기르는 거위가 알을 낳듯이 그가 보유한 어떤 자산들은 알을 낳는다. 보통 주식, 채권, 부동산은 알을 낳을 수 있는 자산이고 금이나 현금은 알을 낳지 않는 자산으로 친다. 이때 어떤 자산이 얼마나 많은 알을 낳는지 가늠하기 위한 숫자가 수익률(yield)이다.

수익률이라는 하나의 잣대

여러 가지 자산 가운데 어느 것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값진 것인지 알아보려면 수익률이라는 하나의 잣대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투자자산인 채권 주식 부동산의 수익률에 관해 생각해보자.

먼저 채권 수익률을 살펴보자. 판도라금융이라는 회사가 발행한 3년 만기 채권 수익률이 5%라고 하자. 오셀롯 씨가 이 채권을 100만원어치 사서 3년 동안 갖고 있으면 이 채권의 가치는 3년 후 115만7625원으로 불어난다. [100(1+0.05)3=115.7625] 그 동안 받는 이자는 5% 수익률로 재투자하고 약속대로 원금을 돌려받는다면 그렇다. 오셀롯 씨의 거위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깨어난 새끼가 커서 또 알을 낳듯 채권 가치도 이자가 이자를 낳는복리계산(compounding)의 원리에 따라 불어난다.



채권의 수익은 이자가 이자를 낳은 복리계산의 원리에 따라 불어난다. <출처:NGD>

오셀롯 씨는 채권 만기수익률(yield to maturity)을 정확히 계산하는 법까지 익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모든 자산의 가치평가(valuation) 방식이 그러하듯이 채권의 현재가치(present value)는 앞으로 받을 이자와 만기 때 돌려받을 원금을 어떤 이율로 할인(discount)한 금액이라는 기본 원리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판도라금융 채권의 만기수익률이 5%라는 말은 오셀롯 씨가 3년 동안 받을 이자와 원금의 현재가치가 이 채권의 현재 시장가격(100만원)과 같게 하는 할인율이 5%라는 뜻이다. [현재가치와 할인의 개념에 대해서는 '정글경제의 원리' 첫 번째 질문(시간의 값은 얼마인가)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런 원리를 이해하면 채권 수익률과 채권 가격은 반대로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장 실세금리가 오를 때, 다시 말해 이자와 원금에 대한 할인율이 높아질 때 채권 값은 떨어지는 것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채권 만기가 길수록 투자자가 안아야 할 위험도 커지고 그만큼 수익률도 높다. (투자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불확실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할 때 리스크가 커지는 것은 다른 자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채권 수익률과 비교할 수 있는 주식의 수익률을 어떤 것일까? 아마존식품이 발행한 주식을 거위에 비유한다면 이 거위가 낳는 알은 무엇일까?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들이 받는 이자처럼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의 통장에 들어오는 (직접적인) 수입은 배당금(dividend)이다. 아마존식품의 주가가 5만원이고 이 회사의 주당순익(earnings per share)이 3,500원, 배당금이 1,000원이라면 배당수익률(dividend yield)은 2%다. [1,000/50,000=0.02]

그러나 아마존식품이라는 거위가 낳는 알은 이 회사가 창출한 순익 가운데 실제 주주들에게 지급하는 배당금뿐만 아니라 회사 내에 유보하는 이익(잠재적인 배당금)까지 모두 합한 금액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거위가 낳은 알과 거위 뱃속에 밴 알을 합한 것과 같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이 회사 주식의 내재적인 수익률은 7%라고 할 수 있다. [3,500/50,000=0.07] 이 수익률을 주식수익률(earnings yield)이라 부르기로 하자. 주식수익률은 오셀롯 씨도 익히 알고 있는 주가수익비율(Price-Earnings Ratio, PER)의 분자와 분모를 뒤집은 숫자다. (따라서 수익주가비율로 부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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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은 배율이기 때문에 백분율인 채권 수익률과 비교할 수 없지만, 주식수익률은 채권 수익률과 직접 견줘볼 수 있다. 주식수익률의 개념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주식수익률은 주식값이 오르내림에 따라 생기는 자본이득이나 손실(capital gain이나 capital loss)과는 무관하게 기업의 이익 창출로 생긴 주식의 내재적인 수익성을 보여주는 숫자다.

부동산 수익률도 같은 원리로 구해볼 수 있다. 오셀롯 씨가 투자한 정글아파트의 시가가 5억원이고 이 아파트의 전세금이 2억원이라 하자. 이 아파트를 거위에 비유한다면 전세금 2억원을 모두 이 거위가 낳는 알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전세금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돌려줘야 할 돈이다. 실제로 오셀롯 씨가 손에 쥘 수 있는 수익은 전세금을 은행에 맡기고 받는 이자나 다른 자산에 투자해 얻는 배당금이다. 그 금리나 배당률이 4%라면 정글아파트 전세금에서 얻는 수익은 연간 800만원이 되고 정글아파트의 임대수익률은 1.6%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800/50,000=0.016]

주식-채권 수익률의 대역전은 왜 일어났을까?

다음 그래프는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증권시장에서 주식과 채권 수익률이 어떻게 오르내렸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채권수익률은 신용등급이 AA인 3년 만기 무보증 회사채의 월평균 유통수익률이다. 주식수익률은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이 산출한 한국 주식시장의 가중평균 PER의 역수다. 이때 순익은 상장기업들의 지난 1년간 실적이 아니라 향후 1년간 순익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상치(컨센서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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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래프는 지난 20년간 한국 경제와 자본시장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2000년 초 주식수익률과 채권 수익률간 역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1992년 1월~1999년 12월)에 회사채수익률은 월평균 13.1%였으나 2000년대(2000년 1월~2010년 8월)에는 1990년대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6.0%로 낮아졌다. 반면 주식수익률은 1990년대 7.1%에 그쳤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11.5%로 높아졌다. 1990년대에는 주식수익률이 회사채수익률의 절반 수준이었다. 외환위기가 한껏 고조됐던 1997년 12월에는 회사채수익률과 주식수익률 사이의 격차가 18.1%포인트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에는 거꾸로 회사채수익률이 주식수익률의 절반 수준이었다. 2003년 3월과 2004년 7월에는 주식수익률이 회사채수익률을 11.4%포인트나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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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경제를 탐사하는 이들은 이 하나의 그래프를 보면서 수많은 물음을 던질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주식과 채권 수익률간 이처럼 뚜렷한 역전이 일어났을까? 이 물음에 한마디로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식과 채권 값에 영향을 미치는 경기와 물가, 통화정책, 해외 금리와 금융시장 개방, 주식과 채권 수급상황, 금융시스템 불안요인을 비롯한 여러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2000년대 주식수익률이 채권수익률을 웃도는 것은 정상적인가? 그렇다면 채권이 주식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1990년대는 비정상적인 시기였을까? 1990년대 투자자들은 왜 그토록 낮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에 몰렸을까? 이에 대한 정밀한 실증연구까지 하지는 않더라도 지금까지 논의한 정글경제의 원리를 갖고 이론적인 사고훈련을 해볼 수는 있겠다.

일반적으로 주식은 채권보다 리스크가 높은 자산으로 여겨진다. 채권을 가진 이들은 언제 얼마의 이자를 받을지 확실히 알 수 있다. 또한 만기가 되면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주식 보유자들은 언제 얼마의 배당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상환 만기가 없는 주식은 시장에 팔아야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다. 기업이 쓰러져 빚잔치를 하게 되면 먼저 채권자들이 자기 몫을 챙겨간 후에 남는 게 있어야 주주들이 그걸 나눠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채권 투자자들보다 많은 위험부담을 안는 주식 투자자들은 채권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것이다.

1990년대에는 2000년대보다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심했다. 1990년부터 10년 동안 소비자물가지수(CPI)는 75.2% 뛰었다. 이에 비해 2000년부터 10년간 물가상승률은 35.9%에 그쳤다. 인플레이션이 심할수록 채권 투자자들은 실질가치 보전을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할 것이다.

또한 1990년대에는 2000년대보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높았다. 1990년대 10년 새 명목국내총생산(nominal GDP)은 246% 늘어났지만 2000년대 10년 동안에는 93%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수록 기업 이익도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기업 이익이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면 주식의 매력도 커진다. 주식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나 주가가 오르면 주식수익률(주당순익/주가)은 떨어진다.

1990년대처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에는 기업의 투자 수요도 늘어나고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채권 발행도 늘어날 것이다. 다른 자산과 마찬가지로 채권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으면 값은 떨어진다(채권수익률이 오른다). 대체로 1990년대는 2000년대보다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에 대한 기대도 높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안겨주는 채권보다 리스크가 큰 주식에 대한 선호가 강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가 너무 강해 주식시장에 투기적 거품이 일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거위를 팔까 알을 팔까

각종 자산의 수익률은 늘 주먹구구 셈법에 만족하는 오셀롯 씨가 투자 결정을 하는 데 유용한 잣대가 될 수 있다. 물론 수익률뿐만 아니라 자산마다 다른 리스크 구조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주식과 채권, 부동산 수익률은 자본이득(시세차익)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오셀롯 씨는 거위의 알을 팔 수도 있고 거위를 팔 수도 있다. 자산의 수익률을 따져보는 것은 거위가 얼마나 굵고 좋은 알을 거르지 않고 낳을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과 같다. 이에 비해 거위의 몸값이 얼마나 오를 지 생각하는 것은 자산의 시세차익을 겨냥한 베팅과 같다. 거위의 몸값이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으므로 이는 매우 투기적(speculative)인 베팅이다.

오셀롯 씨가 채권이나 주식의 수익률과 리스크 구조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면 여러 모로 창의적인 응용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포도밭을 늘리고 싶은 오셀롯 씨는 친구들에게 현금 대신 와인을 이자로 주는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채권을 사는 이들은 해마다 와인의 품질이 달라지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안아야 한다. 오셀롯 씨는 더 많은 거위를 기르기 위해 현금 대신 거위가 낳는 알을 이자로 주는 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황금 알을 낳지는 않더라도 이자로 주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많은 알을 낳도록 기를 수 있다면 수지맞는 장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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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988년 매일경제 기자로 정글경제 탐사를 시작했다. 금융과 투자의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을 쓰려 한다.


Posted by 탑스미네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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