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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Don’t put all your eggs in one basket)’는 격언은 이제 진부한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 이 오래된 지혜를 정식화한 현대포트폴리오이론(modern portfolio theory)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론모형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해서 그 바탕에 깔린 지혜와 통찰까지 송두리째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이론을 맹신하거나 변화무쌍한 현실에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않도록 유념하면서 여전히 쓸모 있는 가르침만 간직하면 되는 것이다.

달걀을 더 안전하게 담는 법

현대포트폴리오 이론은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래된 지혜를 정식화했다. <출처:NGD>

아마존제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초콜릿을 만들고 있고 정글식품은 초콜릿에 들어가는 카카오를 공급한다. 판도라펀드의 자산 운용을 맡고 있는 재규어 씨는 앞으로 초콜릿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아마존제과 주식에 투자하려 한다. 그러나 이 주식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투자자금의 절반은 정글식품 주식에 투자할 예정이다. 두 회사 주식에 분산 투자하는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만들려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는 여러 가지 개별 자산들을 한 데 묶은 것이다.라틴어에 뿌리를 둔 포트폴리오라는 말은 ‘종이(foglio)’와 ‘나르다(portare)’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처음에는 서류철이나 서류가방을 가리키다 나중에 여러 가지 (종이로 된) 증권의 모음이라는 뜻을 갖게 됐다고 한다.]

두 회사의 기대수익률(expected return)과 수익률의 표준편차(standard deviation)는 다음과 같다. 수익률이 얼마나 큰 폭으로 널뛰기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준편차는 주식 투자에 따르는 리스크(risk)를 가늠하는 수치다. [기대수익률과 리스크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에 관해서는 정글경제의 원리 두 번째 질문(리스크는 무조건 피해야 하나)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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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펀드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률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이 포트폴리오에 편입된 개별자산 기대수익률의 평균을 구하면 된다. 물론 각각의 자산들의 투자비중을 감안한 가중평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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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가늠하기 위한 표준편차를 구하는 것은 조금 복잡하다. [확률과 관련된 수식만 보면 하얗게 질리는 카푸친 씨에게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판도라펀드 포트폴리오 수익률의 표준편차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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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제과와 정글식품 수익률이 싱크로나이즈드 수영을 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같이 움직일 때 두 회사 수익률의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는 1이 된다. 둘의 움직임에 아무런 상관관계도 없으면 이 계수는 0이 되고 둘이 완벽한 한 쌍의 청개구리처럼 언제나 정반대로 튀면 상관계수는 -1이 된다. 위의 공식에 상관계수 1과 0, -1을 대입해보면 다음 표와 같은 결과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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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계수가 1일 때 포트폴리오의 표준편차는 개별자산 표준편차의 평균(35%)과 같지만 이 계수가 낮아질수록 포트폴리오의 표준편차는 줄어든다. 아마존제과와 정글식품 주가가 정반대로 움직인다면 이 포트폴리오의 표준편차는 5%밖에 안 된다.

일반적으로, 완벽하게 같이 움직이지 않는(상관계수가 1이 아닌) 여러 자산을 묶어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개별 자산 수익률의 평균적인 수준의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누리면서도 (수익률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개별자산의 리스크의 평균적인 수준보다 낮출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달걀(투자자금)을 어느 한 바구니(투자대상)에만 몰아서 담지 않고 여러 바구니에 나눠 담으면 그만큼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지혜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다.

현대포트폴리오이론의 한계

199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해리 마코위츠(Harry Markowitz)는 일찍이 투자자산의 수익률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중시해야 하며 개별 자산의 리스크보다 포트폴리오 전체의 리스크에 주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혁신적인 사고는 1950년대 이후 금융경제학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리스크를 숫자로 나타냄으로써 직관과 기술의 영역에만 머물던 리스크 관리를 정교한 이론으로 체계화했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정글경제를 지배했던 현대포트폴리오이론은 이제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 이론에서는 리스크가 같은 여러 포트폴리오 가운데 기대수익률이 가장 높은 포트폴리오(또는 기대수익률이 같은 포트폴리오 중 리스크가 가장 낮은 포트폴리오)를 효율적 포트폴리오(efficient portfolio)라고 한다. 이 효율적 포트폴리오를 구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가정들만 살펴봐도 이 이론이 현실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론의 기본적인 가정은 이렇다. 첫째, 투자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기대수익률과 (리스크를 가늠하는) 수익률의 분산(variance)두 가지 뿐이다. 둘째, 투자자들은 위험회피적(risk averse)이다. 셋째, 모든 투자자들은 주어진 리스크 수준에서 가장 높은 기대수익률을 추구한다. 넷째, 모든 투자자들은 모든 위험자산의 기대수익률, 분산, 공분산(covariance)에 대해 같은 기대를 갖고 있다. 다섯째, 모든 투자자들은 공통적인 1기간 투자를 한다.]

우리는 이런 가정 하나하나에 다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수익률의 평균과 분산만으로 투자자들의 의사결정과 시장의 움직임을 다 설명할 수 있는가? (수익률이 정규분포를 나타내지 않고 ‘검은 백조’와 같은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때 이 이론의 설명력과 예측력은 크게 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수익률의 분산(또는 표준편차)은 과연 진정한 리스크를 가늠할 수 있는 숫자인가? (투자자산을 몇 십 년 동안 보유하는 사람들은 그 동안 이 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널뛰기 하더라도 그다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투자자들은 과연 마코위츠가 상정한 것처럼 늘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가? (비이성적 낙관에 취하거나 패닉 상태에 빠진 투자자들은 수익률과 리스크를 냉정하게 분석해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개별자산들이 서로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움직이는지 알아내는 것도 큰 골치거리다. 마코위츠가 윌리엄 샤프(William Sharp)와 함께 내놓은 해법은 특정 자산의 수익률이 다른 모든 자산들의 수익률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일일이 계산할 필요 없이 그 자산이 시장 전체의 수익률과 어떤 관계를 갖는가만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으로 체계화됐다. 재규어 씨에게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카푸친 씨에게는 난해한 퍼즐이 될 이 모형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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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는 자산 j의 기대수익률, 는 무위험수익률(risk-free rate), 는 시장전체 포트폴리오의 기대수익률, (자산 j의 베타계수)는 자산 j의 수익률이 시장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민감하게 따라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계수다. 예컨대 무위험수익률이 5%, 시장포트폴리오 수익률이 10%, 정글전자의 베타계수가 1.5라면 정글전자의 기대수익률은 12.5%다. [12.5%=5%+1.5(10%-5%)] 정글전자 주식의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은 이 주식의 수익률이 무위험수익률을 얼마나 웃도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예에서 정글전자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7.5%다. [12.5%-5%]

포트폴리오를 짜서 아무리 여러 자산에 분산투자 하더라도 시장전체가 한꺼번에 뜨거나 무너지는 위험까지 줄일 수는 없다. 시장위험(market risk)은 분산불가능위험(non-diversifiable risk) 또는 체계적위험(systemic risk)이라 하고, 개별자산이나 기업에 고유한 위험(unique risk 또는 firm-specific risk)은 분산가능위험(diversifiable risk) 또는 비체계적위험(non-systemic risk)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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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은 얼마나 나눌 수 있는가

아무리 광범위한 분산투자를 하더라도 시장전체의 체계적 위험까지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통합된 자본시장에서는 나라와 자산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시장이 한꺼번에 타오르거나 동시에 얼어붙을 수도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동조화가 심화될수록 분산투자의 효과는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현대포트폴리오이론이 늘 우리에게 공짜점심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이 이론에 깔려있는 지혜를 빌릴 일은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분산투자의 개념은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2008년 8월 뉴욕증권거래소 내부의 모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아무리 광범위한 분산투자를 하더라도 시장전체의 체계적 위험까지 제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출처:NGD>

날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우산회사와 선탠오일회사에 나눠 투자하는 것만이 분산투자가 아니다. 판도라자산운용은 (여러 업종, 여러 나라의) 주식, 채권, 부동산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자산을 포괄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도 있다. 대기업집단인 정글그룹이 여러 사업을 함께 이끌어가는 것은 문어발식 사업다각화의 폐해를 낳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로 투자위험을 줄이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이다.

투자대상 간 상관관계가 적을수록 분산투자의 효과는 커진다. 결혼도 하나의 투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세속적인 재규어 씨가 같은 자산운용업계의 여자친구와 결혼하는 것은 분산투자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전형적인 회사인간인 카푸친 씨가 자기회사 주식에만 올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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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988년 매일경제 기자로 정글경제 탐사를 시작했다. 금융과 투자의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을 쓰려 한다.


Posted by 탑스미네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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