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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타임머신을 만들지 못한 인간들은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한다. 남들보다 한 발이라도 앞서 미래를 보려는 욕망이 강해질수록 예측의 과학과 기술도 더욱 번창할 것이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정글경제에서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아맞히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남다른 혜안과 통찰력을 보여준 이들의 몸값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빗나간 예측들

“사람들은 경제학을 예측의 과학으로 여긴다. 그렇다면 시카고학 파(Chicago school of economics)의 접근방법은 낙제점을 받아야 한다. 그들의 이론은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주류경제학자들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는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컬럼비아대 교수의 공격이다.

“경제학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를 미리 내다보거나 막지 못한 데 대한 실망감이 널리 퍼져있다. 특히 거시경제학자들은 값어치 없고 해롭기까지 한 수학적 모델을 쓰는 잃어버린 세대로 묘사된다. 이는 터무니없는 묘사라고 생각한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시카고대 교수가 주류경제학자들을 변호한 말이다.



2세기 전에 이미 인구폭발에 따른 지구촌 재앙을 경고했던 토머스 맬서스 <출처 : wikipedia>

루카스는 대중이 경제학자들에게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이냐고 물은 다음 “우리는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 파산 직후와 같은 금융자산 가치의 급격한 하락을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갖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변론을 잠시 더 들어보자.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준 의장도 잠재적인 위기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위기가 터진 후에 나온 것과 같은 대규모의 통화정책을 선제적으로 취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마치 어떤 차가 갑자기 당신 차선으로 뛰어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당장 차의 방향을 틀어 도로를 벗어나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도 경제학자들의 빗나간 예측에 대한 비판과 조롱은 늘 있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듯 ‘지난 한 번의 경기침체를 두서너 대여섯 번 예측한’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아냥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라비 바트라(Ravi Batra)의 [1990년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 of 1990)]은 베스트셀러가 됐지만 그의 예언은 끝내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2세기 전에 이미 인구폭발에 따른 지구촌 재앙을 경고했던 토머스 맬서스 (Thomas Malthus)의 예언도 결국 빗나갔다. [인구 폭발에 대한 공포는 오랫동안 인류의 사고를 지배했다. 1960~70년대까지도 공상과학소설에는 30년 동안 생식을 금지하거나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인구를 안락사 시키는 것과 같은 극악한 처방이 나올 정도였다.]

오늘날 카푸친 씨는 예언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닥터 둠(Dr Doom)들이 수도 없이 경고한 것처럼 과연 글로벌 경제가 더블딥(double dip)에 빠질지, 글로벌 통화전쟁이 파국으로 치달을지, 세계경제가 또 다른 금융위기를 겪게 될지, G2(미국과 중국) 간 패권다툼과 문명 간 충돌로 지구촌이 더욱 위험한 싸움터가 될지, 역사발전의 마지막 단계라던 자본주의가 새로운 체제로 진화하거나 변혁을 겪을지, 생명과학과 정보기술의 힘으로 유토피아(Utopia)나 디스토피아(Dystopia)가 실현될지에 관한 온갖 예언들을 들으며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는 누구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카푸친 씨도 족집게 도사가 될 수 있다

카푸친 씨가 찾는 사람은 터무니없는 예언을 늘어놓는 주술사가 아니다. 그는 진정한 통찰력을 갖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이를 찾고 있다. 그런 카푸친 씨는 어떤 전문가의 예측을 신뢰하기 전에 먼저 지난날 그 전문가가 했던 예측들이 얼마나 맞아떨어졌는지를 알아보려 할 것이다. 적중한 예측의 기록이 많이 쌓인 전문가일수록 권위와 신뢰는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권위 있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그의 예측을 맹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예컨대 어떤 이코노미스트나 애널리스트들의 예측이 여러 차례 딱 맞아떨어졌을 때 그들을 족집게 도사로 치켜세우며 무작정 따르는 이들은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fallacy of appeal to authority)’에 빠질 수 있다.

더욱이 그 예측이 맞아떨어진 게 그들의 예지력보다는 순전히 운에 따른 것이라면 그를 무턱대고 믿었던 이들이 안을 위험은 참으로 클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놀라운 통찰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인 전문가들은 얼마나 많은가? 카푸친 씨는 그런 운 좋은 전문가를 직접 키워낼 수도 있다. 단순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카푸친 씨는 정글야구단과 아마존야구단이 맞붙는 2015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때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정보지를 팔아 돈을 벌고 싶다. 그는 일곱 차례 경기의 승패를 족집게처럼 알아맞힐 수 있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대중들이 믿어줄) 최고의 전문가를 내세우려 한다. 한국시리즈 4차전까지 네 번 내리 경기 결과를 알아맞힌 스타 분석가를 내세워 다음 경기를 예측하는 정보지를 판다는 게 그의 계획이다. 
카푸친 씨는 우선 16명의 ‘야구경기 분석 전문가’를 고용한다. 그들이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어도 상관 없다. 1차전에서는 16명의 ‘전문가’ 중 8명은 정글구단의 승리를, 다른 8명은 아마존구단의 승리를 점치도록 한다. 경기가 끝나면 어느 쪽이 승리하든 상관없이 8명의 예상이 맞아떨어진다. 2차전 때는 그 8명 중 4명이 정글구단의 승리를, 나머지 4명이 아마존구단의 승리를 예언한다. 이번에도 경기 결과에 무관하게 4명은 두 번 내리 경기 결과를 알아맞힌 것이 된다. 3차전에서는 4명 중 2명이 세 번 내리 결과를 알아맞힌 전문가가 된다. 4차전이 끝나면 네 번이나 내리 결과를 알아맞힌 족집게 분석가가 탄생한다. 네 번의 경기 결과가 어찌됐든 상관 없이 반드시 한 사람의 스타가 나오게 돼 있다.

예측은 정확한가? 이미지 1

이제 카푸친 씨가 할 일은 이 스타 분석가의 놀라운 선견지명을 널리 알리고 그의 견해를 실은 정보지를 비싸게 파는 일뿐이다. 5차전 승패를 알고 싶은 이들(특히 경기결과에 큰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이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족집게 도사의 예언을 들으려 할 것이다. (정글구단이 4연승하거나 4연패할 경우 이를 알아맞힌 분석가를 내세워 내년 시리즈 때 장사를 할 수 있다.)

같은 원리에 따라 시즌 중 일곱 번의 승패를 내리 알아맞힌 족집게 도사를 내세우려면 128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면 된다. [27=128] 경기를 한 번 치를 때마다 결과를 알아맞힌 이들은 절반씩 줄어들어 7차전이 끝나면 일곱 번을 내리 맞힌 한 사람의 스타가 남게 된다. [128(0.5)7=1]

주식시장에서 연속 히트를 기록한 ‘투자의 귀재’들 중에도 단지 운이 좋아 스타가 된 이들이 있을 것이다. 워렌 버핏(Warren Buffet)이 제안한 것과 같은 동전 던지기 시합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한 블랙유머다. 한국에서 그 시합을 벌인다면 다음과 같은 식이 될 것이다.

15세 이상 인구 4,000만명에게 1만원씩 나눠주고 10원짜리 동전을 던지게 한다. 다보탑이 나오면 이기고 10이라는 숫자가 나오면 진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에게 가진 돈을 넘겨줘야 한다. 이기거나 질 확률이 반반씩이므로 동전을 던질 때마다 승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스물 네 번째 동전을 던졌을 때 24연승을 기록한 승자는 두 명이 남을 것이다. [4,000만명x(0.5)24=2.38명] 이들은 각각 1,677억원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1만원x(2)24=16,777,216만원] 이들은 다보탑이 나오도록 동전을 던질 수 있는 신기를 터득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일까? 그들이 스물 다섯 번째 동전을 던질 때 다시 이길 확률은 얼마일까?

회의주의자가 되라

어떤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내놓는 예측들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늘 고민하는 카푸친 씨는 이제 보다 많은 의심을 품게 될 것이다. 우선 그 전문가들의 권위가 진정한 통찰력에서 나온 것인지 단지 운 좋게 맞아떨어진 예측의 기록이 쌓여서 생긴 것일 뿐인지 따져볼 것이다. 어떤 예측 전문가가 지난날 높은 적중률을 기록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확신할 근거가 있는지, 그의 말이 반증이 가능한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주술사의 예언일 뿐인지도 따져볼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미국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 <출처 : wikipedia>

카푸친 씨가 당장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이론모형이 지닌 예측력의 한계를 논할 정도로 전문적인 식견을 갖출 수는 없다. 하지만 빗나간 예측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기본적으로 몇 가지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첫째, 어떤 이론모형도 현실을 완전하게 담아낼 수는 없으며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담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론모형은 어차피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으므로 변화무쌍한 현실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둘째, 비현실적인 가정들이 이론모형의 예측력을 크게 떨어트릴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완전한 정보를 갖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를 가정한 이론, 정보비대칭(informational asymmetry) 문제가 없고 늘 재빨리 균형으로 돌아가는 가장 효율적인 시장을 전제로 한 이론모형으로 투자자나 소비자의 온갖 비합리적인 행태나 금융시장의 비이성적 과열을 예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과거 역사에서 어떤 운동법칙을 찾아내고 이를 미래에 투영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예측의 한계를 생각해야 한다. 우선 그 법칙이 과연 법칙이라 할 만한 것인지부터 의심해봐야 한다.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에 나선 경제학자든 과거의 추세를 보고 주가를 예측하려는 기술적 분석가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역사주의(Historicism)를 강력히 비판한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수레를 예견한다는 건 그 걸 만들어낸다는 것(to predict the wheel is to invent it)”이라고 말했다. 수레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수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수레는 이미 미래가 아니라 현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수레가 나올 걸 미리 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 컴퓨터 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이는 훨씬 더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장경덕 이미지
장경덕 |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
1988년 매일경제 기자로 정글경제 탐사를 시작했다. 금융과 투자의 개념과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글을 쓰려 한다.


Posted by 탑스미네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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