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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나의 입이 된 시대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언어생활도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말과 글의 뒤섞임이다. 말과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데서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말하는 대로 받아 적으면 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화를 글로 옮기면 부정확한 표현이나 불필요한 군더더기 표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을 그대로 적었을 때 어색하지 않은 글이 될 정도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말을 받아 적었더니 통찰과 논리가 담긴 가르침이 되는 경우는 부처, 예수, 무함마드(마호메트)처럼 성인들이나 가능하지, 보통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사실 공자나 소크라테스 같은 철인들이 제자들과 주고받은 대화가 책으로 엮이게 된 데에는 스승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정리한 제자들의 역할이 컸다.

말은 빠르고 글은 느리다. 말하기는 쉽고 글쓰기는 어렵다. 말은 생각하는 즉시 단어로 표현되지만 글은 생각하는 즉시 문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의 흐름을 말로 드러낼 수 있지만 글로 옮기자면 수고롭고 시간이 걸린다. 글로 적는 순간에도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생각은 바뀌고 다듬어진다. 거친 것들을 걸러낼 수 있어 글은 논리적이다.

말과 글의 또 다른 차이점은 기록되어 남아 있느냐다. 말은 말하는 그 순간 상대에게 전달되고 사라지지만 글은 다르다. 한 번 기록되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전승되고 유통된다. 말이 글로 기록되면서 한 세대의 지식과 지혜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됐고, 인류와 문명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기록되어 전승된 말에는 이전 세대의 소중한 지식과 가치가 담겨 있다.

글로 대화하는 세대의 출현

우리는 이제 말풍선으로 소통한다.

스마트폰 세상이 되면서 말이 글 고유의 기능을 갖게 됐다. 부지불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글로 대화를 하고 있다. 카카오톡이나 라인,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 덕분이다. 스마트폰 이후 SNS를 통한 소통은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2012년 12월 카카오톡이 서비스 개시 1000일을 맞아 공개한 자료는 7000만 명 이상의 사용자가 일주일 평균 6.38일, 하루 평균 43분간 카카오톡을 쓴다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청소년은 가장 열성적인 사용자다. 2012년 6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의 고교생과 대학생 4876명을 대상으로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도 유사하다. 하루 평균 카카오톡 이용 시간이 두 시간을 넘는다고 답한 고교생과 대학생은 2396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57퍼센트였다.

청소년과 젊은 층에서 시작된 문자 대화는 갈수록 광범하게 확산되고 있다. 젊은 층의 문자를 통한 대화 문화는 하나의 새로운 사회적 의례로 자리 잡고 있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시도로, 또래와의 문자 대화에서만 통하는 용어와 이모티콘, 줄임말을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전화에서도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글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는 있었지만 글이 말을 대체한 것은 카카오톡, 라인, 왓츠앱 등과 같은 스마트폰의 ‘메신저 앱(문자메시지 애플리케이션)’에 이르러서다.

메신저 앱을 통한 소통은 기존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 문자메시지들도 지금은 대부분 별도의 요금을 내지 않고 쓸 수 있지만, 메신저 앱 이전 문자메시지는 한 통에 30원, 20원씩 요금이 부과됐다. 과거의 전화 예절이 ‘용건만 간단히’였던 것처럼 문자메시지도 필요한 내용 위주의 소통이었다. 지금의 10대들처럼 상대의 말끝마다 “ㅋㅋ”라고 맞장구를 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아이폰에서 대화 상대와 과거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모아서 보여주는 기능이 비로소 생겨났지만 그 이전에는 과거의 문자 내역이 흩어져 낱낱이 존재했다. 문자메시지는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내용이 80바이트로 제한돼 있어서 띄어쓰기를 포함해 40자가 넘으면 발송이 불가능했다. 나중에 40자 이상의 사연이나 이모티콘 또는 사진 같은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보낼 수 있는 기능(MMS)이 추가됐지만 송수신자 모두에게 별도의 요금이 부과됐다.

하지만 메신저 앱 이후에 상황이 달라졌다. 우선 상대와 문자를 주고받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문자를 주고받을 때마다 요금을 내지 않고 와이파이만 되면 공짜로 쓸 수 있는 특성상 용건 위주의 통신이 아닌 재미와 수다 위주의 소통이 이뤄지게 됐다.

일상의 대화나 다름없는 메신저 앱 소통. 글뿐만 아니라 각종 스티커와 이모티콘으로 감정과 표정을 대신한다.(메신저 앱 ‘라인’)

메신저 앱 의 기술적 특성은 그 서비스를 통해 오고 가는 문자메시지의 내용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용건 위주의 정제된 사연이나 글 대신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표현하는 도구로 쓰이기 시작했다. 메신저 앱 은 점점 일상의 대화를 닮아갔다. 메신저 앱에서는 상대의 말에 대꾸를 해주거나 자신의 반응을 이모티콘과 사진으로 표현한다. 대화는 상대 앞에서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즉시성과 응대성이 있기 때문에 대화와 비슷한 메신저 앱은 상대가 문자를 보내면 곧바로 대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사용자들 사이에 정착한 일반적 사용법이다. 하지만 실제 대화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상대가 떨어져 있어도 소통이 가능하고, 바로 응대하지 않고 서너 시간 뒤에 대꾸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와의 대화 내용이 시간 순대로 모두 기록되어 언제든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채팅방을 열고 대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메신저 앱, 카카오톡 대화 중에 재미난 내용만 모아 소개하는 ‘카톡 유머’라는 새로운 유머 장르가 생겨나기도 했다.

대화가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

메신저 앱 이 불러온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우리가 말을 글로 자동 기록하는 언어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메신저 앱 대화가 말을 대체하면서 대화가 통째로 기록으로 남고 있다. 나와 상대와 서버에 세 개의 원본이 있는, 일종의 내용 증명 대화다. 내가 스마트폰에서 대화 내용을 지워도 상대의 전화기에는 그대로 보존돼 있다.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이 대화 내용을 모두 지워도 메신저 앱 서버에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메신저 앱이 기존의 문자메시지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두 사람 간의 통신만이 아니라 세 사람 이상 수백 명이 한 방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집단채팅’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웬만하면 한 학급의 학생들이 집단채팅 방을 만들어 소통하고 있으며, 몇몇 친구들끼리 또 별개의 채팅방을 만들어 운영한다. 일부 청소년 사이에서는 ‘카톡 왕따’나 ‘카톡 감옥’ 같은 사이버 괴롭힘의 수단으로 신기술을 악용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메신저 앱 집단채팅에서 나눈 대화 내용은 거의 비밀이 지켜지기 어렵다.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이 대화 뒤에 채팅방을 빠져나오거나 자신의 스마트폰에서 대화 내용을 삭제하더라도 누군가는 이를 보관하고 있을 수 있다. 더욱이 대화 내용은 스마트폰에서만 보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메신저 앱들이 제공하는 ‘대화 내용 이메일로 보내기’ 기능을 감안하면 메신저 앱의 채팅은 사실상 누군가에 의해 보존되고 있는 준영구 기록으로 여겨야 한다.

말이 글로 바뀌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다 허공으로 사라지던 대화가 기록으로 바뀌어 빛의 속도로 유통되는 세상이다. 말이 글로 바뀌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이따금 편리할 때가 있지만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국회에서는 특정한 발언 내용을 속기록에서 삭제할지를 둘러싸고 정당 간에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공적인 회의 자리에서 국회의원 스스로 자신의 말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고 카메라와 속기사 앞에서 발언한 것인데도 나중에 후회할지 모를 말을 기록에서 삭제하려고 다툼을 벌이는 것이다.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대부분이 사용하고 있고 일부 이용자는 메신저 앱을 쓰기 위해 스마트폰을 구매할 정도로 매신저 앱은 인기가 높다. 하지만 메신저 앱의 서비스 구조와 기술적 특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이용자가 많다.

몇몇 연예인들의 성범죄가 드러난 것도 상대의 메신저 앱을 통해서였다. 생생하게 기록된 구체적 정황이 범죄 혐의 입증에 결정적 단서가 되었던 것이다. 상대와 직접 메신저 앱을 하고도 초기에 혐의를 부인했던 이들은 사실이 드러난 뒤에 정보기술에 대해 무지한 데다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함께 받았다. 유명인들만이 아니라 일반 범죄 사건에서도 메신저 앱에 남아 있는 대화는 증인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는 주요한 증거로 기능하고 있다.

메신저 앱을 사용할 때는 중요한 기술적 특성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첫째, 메신저 앱 대화는 말이 아닌 글이라는 점이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말과 달리 영구히 보존될 수 있는 글로 대화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둘째, 내가 메신저 앱으로 말한 내용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게 대화 상대나 집단채팅방의 누군가가 대화 내용을 저장하거나 이메일로 보내 보관할 수도 있다. 일단 말하고 나면 주워 담거나 부인할 도리가 없다. 셋째, 메신저 앱의 기능을 충분히 알고 써야 한다. 숫자로 표시되는 수신 확인 기능이 있어서 상대가 나의 메시지 수신 여부와 확인 시각을 알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찌감치 확인해놓고 이튿날 “방금 확인했다”고 둘러댄다면 상대에게 불신만 안겨줄 뿐이다.

메신저 앱의 대화가 주요 범죄에서 결정적 증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검찰과 경찰의 압수 수색이 쇄도하면서 메신저 앱 운영사는 이용자의 메시지를 서버에 보관하는 기간을 계속 단축하고 있다. 메신저 앱과 달리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는 통신업체 서버에 그 내용이 저장되지 않는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문자 내용은 발신과 수신 즉시 삭제하고 발ㆍ수신 기록만 1년간 서버에 저장한다.

카카오톡 사찰은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에 가려져 있던 어두운 그늘을 드러낸 사건이다. 텔레그램으로 망명한다고 해서 이 모든 그늘이 사라질 수는 없다. 디지털의 속성을 파악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카카오톡 홈페이지>

사라짐을 구현한 서비스들

이런 상황에 착안한 새로운 서비스도 나타나고 있다. 듣는 즉시 사라지는 말처럼 문자 대화도 확인 즉시 자동 삭제되는 기능을 적용한 서비스다. 2013년 국내에 선보인 SNS 프랭클리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10초가 지나면 대화 상대의 창에서 내용이 자동 삭제된다. 삭제되면 회사 서버에서도 복구할 수 없다. 단체대화방에서 누군가 대화 내용을 저장하면 모두에게 그 사실이 통보된다. 라인, 마이피플 등도 사용자가 대화 내용이 자동 삭제되도록 설정할 수 있는 ‘타이머 챗’ 기능을 추후 도입했다.

이 분야에서는 2011년 7월 미국에서 선보인 사진공유 앱 스냅챗(SnapChat)이 개척자다. 주고받은 사진이 즉시 삭제돼 흔적이 사라지는 기능을 이용해서 은밀한 사진이 오갔고, 덕분에 누드챗(Nude Chat)이란 별명을 얻었다. 페이스북도 2012년 유사 서비스인 포크(Poke)를 내놓았다.

빅토어 마이어쇤베르거는 일찍이 2009년 저서 [잊혀질 권리]에서 정보에 유통기한을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기록과 보존이 수월해진 디지털 세상에서 기록 대신 망각이 사업 모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메신저 앱들은 이동전화 문자메시지 기능에 비해 대화 기록 보존과 집단채팅방을 우월한 특성으로 강조하면서 빠르게 문자메시지 기능을 대체했다. 하지만 2014년 10월의 국내 메신저 앱 사용자들의 ‘사이버 망명’ 사태는 문자메시지 앱의 이러한 기능적 우월성만 앞세우고 보안과 같은 사용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업체와 사용자에게 독이 되는 기능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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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 한겨레신문 부설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 언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한양대 신방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1990년부터 한겨레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2014년 설립된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2014), [인터넷에서는 무엇이 뉴스가 되나](2005), [별별차별](2012, 공저)을 저술했으며, [잊혀질 권리](2011)를 번역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를 통해 디지털 시대, 기술의 새로움과 편리함 너머 더 행복하고 지혜로운 사용법을 성찰하고 널리 알리면서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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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철학과 구체적인 지침을 ‘디지털 리터러시’ 개념으로 제안한다. 디지털의 속성과 구조를 파악하고 디지털 문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필수 교양이 된 것이다. SNS가 주는 박탈감이나 행복감 모두를 성찰하면서 도구로서 현명하게 사용할 방법을 권한다. 사람과 디지털의 건강한 관계 맺기를 위한 지침서!


Posted by 탑스미네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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